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문단 편집) ===== 스웨덴의 1차 공격과 로스킬레 조약의 굴욕 ===== 프레드리크 3세로서는 스웨덴군이 폴란드에 발이 묶인 틈을 노리고 제2차 북방 전쟁에 개입했으나 스웨덴의 칼 10세 구스타브는 과감하게 폴란드에서 철수한 후 삽시간에 덴마크의 내륙 영토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과 유틀란트 반도를 석권했다. 비록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이 바다 건너인 셸란 섬에 위치했기 때문에 당장은 큰 위협이 없을 줄 알았으나 AD 1657년 12월 기록적인 한파를 기록하며 소벨트 해협이 얼어붙자 칼 10세 구스타브가 과감하게 빙상도하를 통해 걸어서 바다를 건너 퓐 섬까지 장악해 버렸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칼 10세 구스타브는 이어서 더 넓은 대벨트 해협 역시 빙상도하를 통해 AD 1658년 2월 8일 셸란 섬에 도착했다. 이후 코펜하겐을 포위당하자 프레데리크 3세가 굴복하여 AD 1658년 2월 26일 '로스킬레 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프레데리크 3세가 모든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에 스웨덴에게 이전의 제2차 브룀세브로 조약으로 30년간 조차해 주었던 할란드를 이번에는 완전히 양도하고 그 밖의 덴마크 영토 일부([[스코네]], 블레킹에, [[보른홀름 섬]])와 노르웨이의 일부(부흐슬랜, 트론헤임)의 소유권도 넘겨야 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에게 적대적인 선박의 통과를 허용하지 말아야 했으며 스웨덴군의 덴마크 내 주둔 비용도 제공해야 했다. 한편 칼 10세 구스타브의 처가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은 본래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조의 방계로서 역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이 덴마크 국왕과 함께 명목상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을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은 지리적으로 슐레스비히는 덴마크에 속했고 홀슈타인은 독일에 속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 더욱이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두고 오랫동안 덴마크 국왕들과 대립했기 때문에 이미 1세기 동안 사실상 독립 상태를 유지하며 오히려 덴마크와 전통적인 적대 관계인 스웨덴과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이제 칼 10세 구스타브가 프레데리크 3세를 굴복시키면서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은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